우리개는 안물어요

 

십 수년전, 약대에 다닐 때의 일이다.

 

학비에 보태려고 과외 한참 뛰면서 주경야독(?)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누구 소개로 오퍼가 하나 들어왔다. 가보니 중학생 아들한테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하였다. 일종의 공장으로 가내수공업 비슷했는데 면장갑 이런거 만들던 집이었던거 같다. 1층은 공장이고 2층은 가정집이었는데, 가족들은 2층에서 생활하고 있는 듯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공장2층을 올라가려면 큰 개집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 집에 서식하던 개는 몸길이 2미터 정도에 키가 1미터 정도되었고, 뒷다리로 일어서면 웬만한 성인 키를 훌쩍 뛰어넘는 장대한 기골을 가진 개였던 것이다. 눈은 항상 충혈되어 있었으며, 검은색 짧은 털은 윤기가 났고, 귀는 한쪽이 뭔가에 잘린듯한 표시가 있었다. 이빨은 전형적인 사냥개의 그것으로 야생늑대 저리가라할 만큼의 단단한 치아사이로 항상 침이 질질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첫번째 수업을 하러 그집에 올라가려고 하는데 나와 눈이 마주친 그 개는 미친듯이(!)짖기 시작했다. 시뻘건 눈이 반쯤 뒤집어진상태로 귀가 찢어질듯한 소리를 내며 짖는동시에 나의 경동맥을 목표로 자꾸 도약하려고 하는 그 개를 주인 아줌마가 백허그(?)한 상태로 잡아줘서 겨우 계단을 올라갈 수 있었다. 겁이 많이 났다. 그래도 과외비욕심에 수업을 진행하였다. 첫 수업을 마치고 아줌마한테 넌지시 물어보았다.

 

"아주머니, 저 개가 참 야성적이네요.. 쪼매 무섭네요 ㅎㅎ"

 

그랬더니 아줌마가

"저희 개 사람 안물어요."

"네~그렇군요." 하고 첫수업은 좀 찝찝한 상태로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다음주에 수업을 또 하러 가니 그 개 상태가 전보다 더 안좋았다. 거의 미친개 수준으로 날뛰면서 날 공격하려는 태세를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수업을 마치고 아줌마한테 또 슬쩍 물어봤다. 진짜 사람 공격안하냐고. 절대 사람 안문다고 대답했다.

 

 

반응형

 

문제는 그 다음주에 터졌다.

 

난 또 그 개를 피해서 빠른걸음으로 올라갔고 수업을 한뒤 공장마당에 있는 차를 타기 위해 그 개집 앞으로 지나쳐갔다. 그런데, 웬일인지 평소에는 잠잠하던 그 개는 날 보더니 이젠 거의 100%crazy한 상태가 되어 철제 기둥에 묶어놓은 쇠사슬 개줄이 끊어져 나갈 정도로 점핑 점핑 하는 것이었다. 난 그걸 보면서도 뭐 별일 없겠지 하면서 내 차로 이동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퍽'하는 소리와 함께 짐승이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급히 돌려보니 개가 약 시속 80km로 전력질주해서 그 긴혀를 옆으로 내민채 시뻘겋고 광기에 어린 눈으로 허연 이빨을 다 드러낸채 나에게 달려오는 것이었다!

난 잽싸게 차에 탄 뒤 문을 잠그고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차창밖을 바라보았다. 개는 운전석 창문에 그 육중한 몸을 계속 부딪히고 날카롭게 날을 세운 앞발을 들어 쾅쾅 내려치는 것이었다. 난 머릿속이 하얘진채 차를 몰아 내 자취방으로 돌아왔고 며칠동안 그 개의 살의에 찬 몸짓에 악몽을 꾸었다.

 

우리개는 안물어요

 

그리고는 며칠뒤 아줌마한테 전화해서 도저히 수업을 못갈것 같다고 하니까 그 아줌마는

 

"우리개는 안물어요~ 약속을 했으면 지키셔야지 이렇게 하는 법이 어디있나요? 나중에 사회생활 하실텐데 그렇게 사회생활 하시면 안되요~"라며 오히려 훈계를 하는 것이었다. 처음 지불한 돈에서 수업한 만큼 제하고 다시 입금하고 그날 저녁 그 집 아들내미한테 전화를 했다.

 

"야..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혹시 그개 진짜 사람 안물었냐?"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 아이는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선생님.. 사실 얼마전에도 우체부 팔이랑 손 물어가지고 병원 실려가고 난리 났었어요.."

 

난 그 말을 듣고 충격으로 바로 얼어버렸다..

 

왜 개주인들은 자기 개는 안문다고 할까? 그리고 왜 그 아줌마는 나한테 거짓말을 했을까? 물론 주인은 안 물겠지만, 타인은 언제든지 공격할 수 있는게 개의 본성이다. 개 주인은 그 사실을 잘 알고 그에 대해 대비해야 한다. 오늘 뉴스에 개에 공격당한 어린이 이야기가 나와서 갑자기 옛날에 겪은 일이 생각나서 한번 써본다.